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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실 역사에서 사라진 이유
강선영   |   2020-10-01 [23:34]

▲ 장영실 역사에서 사라진 이유(사진=온라인 커뮤니티)     ©

 

[주간시흥=강선영 기자] 장영실이 1일 누리꾼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영화 ‘천문:하늘에 묻는다’에서 세종과 함께 주인공으로 나오는 장영실은 조선 세종 때 활약한 과학기술자로 생몰년도가 언제인지 정확히 알려진 기록이 없다.

 

언론 보도와 사료 등에 따르면 조선왕조실록에서 장영실이 가장 먼저 언급되는 것은 '세종 7년 장영실이 뇌물을 받아서 태형을 받았다'는 내용이다.

 

처벌을 받아 관직에서 물러났는데 이미 고령이라 다시 관직에 나서지 못했고, 애초 출신이 한미한데다 남은 조선 전기 지방기록이 극히 소략하여 현대에 그 행적을 알 수 없다 정도로 정리된다.

 

상세한 내력을 알 수 없는 노비 출신 과학자라는 그의 이력이 대중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부분이 워낙 많아서 온갖 설왕설래를 만들어냈다.

 

동국여지승람에 "장영실은 아산의 명신이다"라는 기록 한 줄이 전하기 때문에 그가 아산에 내려가서 여생을 마쳤을 것이라는 추측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것도 엉망이라서 아산장씨 대종회에서는 아산장씨 종실이 경상북도 의성에 있고, 현조 때부터 경북 의성에서 살았다면서 장영실이 말년을 경북 의성에서 보냈다는 주장도 나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동시에 아산에도 장영실의 묘가 있는데 시신도 없이 만들어놓은 허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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